시인들의 시모음 _ 시시 

손택수 |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  

연탄이 떨어진 방, 원고지 붉은 빈칸 속에 긴긴 편지를 쓰고 있었다 살아서 무덤에 들 듯 이불 돌돌 아랫도리에 손을 데우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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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 방어진 해녀  

방어진 몽돌밭에 앉아 술안주로 멍게를 청했더니 파도가 어루만진 몽돌처럼 둥실한 아낙 하나 바다를 향해 손나팔을 분다 (멍기 ...

20/0730
손택수 | 아버지와 느티나무  

아버지의 스무살은 흑백사진, 구겨진 흑백사진 속의 구겨진 느티나무, 둥치에 기대어 있다 무슨 노랜가를 부르고 있는지 기타를...

20/0730
손택수 | 대숲, 되새떼  

대숲 위에 되새떼가 와서 운다 너도 뼈가 비었니 나도 비었단다 대나무들, 더는 뻗어 올라갈 수 없는 마디 끝에 새들의 뼈...

20/0730
손택수 | 탱자나무 울타리 속의 설법  

가시 끝에 탱글탱글 빗방울이 열렸다 나무는 빗방울 속에 들어가 물장구치며 노는 햇살과 구름 터질 것처럼 부풀어오른 새울음 ...

20/0730
손택수 | 어부림  

딴은 꽃가루 날리고 꽃봉오리 터지는 날 물고기들이라고 뭍으로 꽃놀이 오지 말란 법 없겠지 남해는 나무 그늘로 물고기를 낚는...

20/0730
손택수 | 폭포  

벚꽃이 진다 피어나자마자 태어난 세상이 절벽이라는 것을 단번에 깨달아버린 자들, 가지마다 층층 눈 질끈 감고 뛰어내린다 안...

20/0730
손택수 | 진흙길  

길이 착 달라붙는 느낌, 뭐랄까 내 발이 무슨 나무뿌리라도 되는 줄 아나 나를 땅속에 아주 심어두겠다는 심사로 길 깊숙이 발...

20/0730
손택수 | 지독한 나무  

가만 보니 나무도 독한 데가 있다. 무슨 자해공갈범처럼 가을 들면서 나무는 제 몸에 상처를 낸다.  매달린 나뭇잎...

20/0730
손택수 | 부엉이 바위  

부엉이가 울었다는 산 부엉이 울음이 바위귀 속으로 들어가 바위가 되었다는 산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침을 놓듯 막힌 혈을...

20/0730
손택수 | 살가죽구두  

세상은 그에게 가죽구두 한 컬레를 선물했네 맨발로 세상을 떠들아다닌 그에게 검은 가죽구두 한 컬레를 선물했네 부산역 광장...

20/0730
손택수 | 선운 동백  

동백을 까는 건 볕에게 맡겨라 난봉꾼처럼 꽃망울  슬슬  얼러대는 바람에게나 맡겨라 소싯적 ...

20/0730
손택수 | 가슴에 묻은 김칫국물  

점심으로 라면을 먹다 모처럼 만에 입은 흰 와이셔츠 가슴팍에 김칫국물이 묻었다 난처하게 그걸 잠시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평...

20/0730
손택수 | 술래의 노래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 마당 구석구석을 쑤시고 있었다 혼자라는 게 영 마땅치 않았지만 술래가 된 게 마냥 싫지만도 않아서, 평...

20/0730
손택수 | 꽃들이 우리를 체포하던 날  

쌍용차 희생자 스물네 분의 분향소가 있는 덕수궁 대한문 앞 식목일 새벽에 중구청이 분향소를 철거하더니 그 자리에 화단을 만...

20/0730
손택수 | 바다 무덤  

아내의 배 속에 있던 아기의 심장이 멎었다 휴일이라 병원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동안 식은 몸으로 이틀을 더 머물다 떠나는 아...

20/0730
손택수 | 빗방울화석  

처마 끝에 비를 걸어놓고 해종일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나 듣고 싶다 밀린 일 저만치 밀어놓고, 몇년 동안 미워했던 사람 일도 ...

20/0730
손택수 | 꽃벼랑  

벼랑을 쥐고 꽃이 피네 실은 벼랑이 품을 내어준 거라네 저 위에서 오늘도 누가 밥을 짓고 있나 칭얼대는 어린 것을 업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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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 시집의 쓸모  

벗의 집에 갔더니 기우뚱한 식탁 다리 밑에 책을 받쳐놓았다 십 년도 더 전에 선물한 내 첫 시집, 주인 내외는 시집의 임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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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 벚꽃 개화 예상도를 보며  

서귀포에  벚꽃이 피는 건 3월 17일, 어머니 사시는 부산 이기대 바다는 23일이다 이기대 언덕에서 수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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