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시모음 _ 시시 

이형기 | 낙화落花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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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 맹물  

물을 마신다 맹물이다 아무리 마셔도 맹물 그냥 맹물이다 안으로 들어간 물은 다시 밖으로 뿜겨져 나온다 뿜겨져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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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 악어  

악어는 왜 하필 악어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또 악어는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지 모르겠다 그 눈물 뒤에는 보이지 않는 용용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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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 소리  

살을 에는 아픔이 순간 온 몸속에 흐른다 그리고 나는 캄캄한 어둠속에 묻힌다 그 어두움에 대고 누가 돌 하나를 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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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 나무 위에 사는 물고기  

물고기들은 물 속이 아니라 나무 위에 산다 바람이 불면 하늘하늘 꼬리와 지느러미를 흔드는 물고기 그러나 바람에는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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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 풍선 심장  

심장을 만듭니다.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어 색칠을 합니다. 원래의 심장은 지난 여름 장마때 피가 모조리 씻겨 빠졌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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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 감기  

미열 6도 7분의 홍조 더운 이마를 식힐까보다. 아스피린과 산탄 엽총 그리고는 가벼운 흥분을 곁들인다. 가늠자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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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 폭포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질주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斷末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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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 일기예보  

한겨울 심야의 라디오 일기예보는 듣기 전에 이미 가슴이 설렌다. 바람은 북동풍 초속 이십오 미터 심술로 퉁퉁 부은 천이십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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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 그해 겨울의 눈  

그해 겨울의 눈은 언제나 한밤중 바다에 내렸다 희부옇게 한밤중 어둠을 밝히듯 죽은 여름의 반디벌레들이 일제히 싸늘한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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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 황혼  

누군가 목에 칼을 맞고 쓰러져 있다 흥건하게 흘러 번진 피 그 자리에 바다만큼 침묵이 고여 있다 지구 하나 그 속으로 꽃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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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   

너는 소리없이 미끄러져 나간다 번들번들 윤이 나는 긴 몸뚱이의 S자 만곡 교태를 부리면서 그러나 그것은 유혹이 아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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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 석류  

이 가을 석류가 익는다 익어서 반쯤 벌어져 있다 실은 지난봄 어느 시인의 대뇌 좌우반구 그 뇌막에 퍼지기 시작한 작은 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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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 밤바다  

날개 상한 갈매기들이 몸부림치고 있다. 솟구쳐 오르려고 그러나 이내 주저앉아버리는 밤바다 파도의 좌절. 깨어보면 베개엔 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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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 칼을 간다  

칼을 간다. 칼을 가는 소리 서걱서걱 이따금 날을 비춰보는 달빛. 지난 여름 호열자가 휩쓸고 간 마을에 이제사 돌아온 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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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 시를 쓰지 못하는 시인 1  

시를 쓰지 못하는 시인은 밤에 또한 잠을 못 잔다. 국산 수면제 스리나 그 매끈매끈한 하얀 정제 속에는 꿈이 스며들 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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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 겨울의 비  

모조리 떨고 나니 온다 겨울의 비. 이젠 낙엽도 질 것이 없는 마른 나뭇가지, 빈 들판엔 남루를 걸친 계절의 신이 혼자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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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 소묘  

산에 올 때마다 가을은 한 겹씩 옷을 벗는다. 잘 익은 그러나 욕정엔 물들지 않은 그녀의 육체 팽팽한 탄력이 곡선에 눌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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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 들길  

고향은 늘 가난하게 돌아오는 그로 하여 좋다. 지닌 것 없이 혼자 걸어가는 들길의 의미. 백지에다 한 가닥 선을 그어보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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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   

그대의 사랑을 나는 이 손으로 느낀다.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 잠든 한 떨기 꽃, 꽃 같은 손이다. 깨어나면 어느덧 턱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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