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시모음 _ 시시 

서정윤 / 퇴적암 지층 2

버릴 것은 버리고 살아야 한다. 깨어진 우리들의 질서를 지며 보기에도 지쳐 버린 우울 어쩌면 누군가의 낙서로서, 또 어쩌면 한갓 복수의 아픔 같은 것으로 슬픔은 지쳐 있었다. 흐르지 못한 우리의 눈물, 고대 전설의 도시만큼 오랜 시간을 기다려 왔지만 아직 참아야 할 부분의 고통...

12/0710  
서정윤 / 노을의 등뼈

봄눈 터지기 전, 갈잎으로 서걱이던 사람 수줍은 냉이꽃 눈길로 비껴간다 상수리가지에 늘어진 노을 저녁 돗자리 깔고 앉아 부끄러운 두어 개 별, 창문을 연다 부전나비 날개 접은 우물가 그리움 맘속 낱말들이 은하수로 뿌려지고 다음 계절 첫 들물을 가슴으로 읽으며 서쪽에서 나를 기다리는 하늘나...

12/0625  
서정윤 / 흩어진 별

묶지 않고 흩어지면 어떤가 봄바람에 자목련 꽃잎 흩어지듯 별들 어림에서 아름답지 않으면 또 어떤가 아직 마련 못한 수의 걱정하며 그냥 기다리시는 아버지 누울 자리 걱정이 앞선다 \"평생 남의 집 세 들어 살았는데 죽어서는 세 살고 싶지 않다\" 얼핏 지나가는 투로 하는 말 발 앞 유리 조각으로...

12/0625  
서정윤 / 보고 싶은

야생초 농원에서 날아오르는 메꽃 씨앗 발자국 거리만큼도 그 어디 텅 빈 나는 떨어져 있네 노을 까무러지는 포도밭 뒷산 날개 처진 그리움이 깃털 부비며 잠자리 준비하는 구름별 얹힌 시간 노래 화석으로 쌓인 지층 켜켜이 뼈마디 연결된 두 소절 고개 내밀어 높은 새소리로 들려오는 그대 뒷모습 ...

12/0625  
서정윤 / 너의 뒤에서 - 아들에게

전생의 사랑을 지우려 오래 잠자고 또 다른 미움을 잊으려 울부짖는다 그래도 나와는 인연이 있어 내 품에 안겨서는 뜻모를 웃음을 웃는다 이제 시작된 사랑의 삶을 위해 나는 너의 뒤에 섰다. 고통과 아픔의 삶보다는 기쁨과 희망의 날이 더 많은 삶, 살기를 나는 바라고 있다 내가 너에게 줄 수...

12/0112  
서정윤 /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건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건 그대의 빛나는 눈만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건 그대의 따스한 가슴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지와잎, 뿌리까지 모아서 살아있는 나무라는 말이 생깁니다. 그대 뒤에 서 있는 우울한 그림자,쓸쓸한 고통까지 모두 보았기에 나는 그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

09/1117  
서정윤 / 사랑을 그리는 마음으로

푸른 소나무에 혼을 심는다 햇살 따스한 눈밭 위에 집을 지으면 반짝이는 눈빛에 바람이 등밀려 가고 있다 아직도 자라는 키 작은 낭만 사실주의 노래들이 휘감는 화폭에 짚단더미 뒤 숨겨둔 여인 훔쳐보며 흰색과 검은색 사이에 서 있다 사랑을 그리는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 붓끝이 ...

09/1117  
서정윤 / 바람

마음속에 부는 바람이 너무 차다 모두들 자신에 바쁠 뿐. 하늘과 언덕과 구름과 꽃이 있다. 구름 속에 꽃이 있고 하늘은 언덕 아래에 있고 그 모두는 별 위에 있다. 아니 그들은 함께 있지 않고 다시 따로 있지도 않다. 어디에 있어도 있을 수 있는 자리에 있다 내가 가는 어느 곳쯤에서 그들은 어...

09/1117  
서정윤 / 아침의 기도

빛 속을 걸었다 영혼의 울림만 종소리처럼 번져 나갈 그 날을 맞으면 시간의 축은 사라지리라 그래, 이제 더욱 가까워졌어. 약속의 그날을 기다리면서도 아직은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었지. 자꾸만 나타나는 징후들이 두려워지는 나는 그들과 함께 흙이 되어 누워있을 나 자신을 본다 자신을 태운 ...

09/1117  
서정윤 / 마음에서

마음에서 시작된 방황 배는 결국 뭍에서 닻을 내리고 번뇌와의 싸움 또한 내 속에서 사라져야 함을 알지만 마음을 깨달을 때 나는 말할 수 있었다. 빗방울은 연꽃에 맺힐 뿐 꽃잎을 적시지 않는다

09/1117  
서정윤 / 눈물을 아시나요

눈물을 아시나요 차가운 눈빛으로 사치스런 외로움으로 애써 외면하려 했던 리듬들이 나를 흔들고 있어요 기와지붕 미끄러진 바람이 생의 남은 조각들을 머리 속에 어질러 놓으면 느껴지던 그 꽃잎의 붉은 빛 눈물 입 안으로 웅얼거리며 따라하던 사슴 무리의 울음소리 찾아보려 고개를 돌...

09/1117  
서정윤 / 그리움 하나

조금도 움직이고 싶지 않은 푸른 꿈을 꾸는 날, 온통 내 안으로 밀고 들어와 오랜 익숙함으로 자리잡은 날개 깃털 무늬에 망설이는 흔적이 남아 하찮아했던 것들에 눈돌릴 여유로 정지된 풍경의 장면 속으로 발을 들여 놓는다. 묶인 매듭을 풀며, 억지로 내 가진 치유력을 믿어 보지만 슬픔의 숫자를 다...

09/1113  
서정윤 / 문득 떠오른 생각으로

문득 떠오른 생각으로 절망해선 안된다. 눈앞에 가려진 막을 걷고 태풍보다 앞서오는 번개를 보며 비천한 두려움에 복종한다. 내 뒤에 선 수호천사는 겁낼 것 없다고, 담대히 나아가라고 등을 두드리지만 내 앞에 닥치는 것들에 늘 절망하고 있다. 강은 흘러가면서 노래하고 그들은 한 점 구름으로 흔...

09/1113  
서정윤 / 무릎을 꿇고

하느님 당신은 빛이십니다. 나는 그 뒤에 쓰러지는 그림자이고 싶지만 그 그늘 속에서 떨고만 있는 한 작은 어둠 어둠 속에 숨을 수밖에 없는, 나는 사랑이지도 못하고 하느님 당신은 언제나 생명이십니다. 나는 그 생명을 조금 나누어 받아 당신의 삶을 살아가는 한 작은 인간 하...

09/1113  
서정윤 / 노을 스러지는 그 뒤로

산 뒤로 노을이 아직 해가 남았다고 말할 때 나무들은 점점 검은 눈으로 살아나고 허무한 바람소리 백야처럼 능선만 선명하게 하늘과 다른, 땅을 표시한다. 고통 속에서만 꽃은 피어난다. 사랑 또한 고통으로 해방될 수 있음을 무수히 자신을 찢으며 깨달아가는 것이다. 노을 쓰러지는 그...

09/1113  
서정윤 / 수채화로 그린 절망 1

내가 묻기도 전에 해는 서산에 진다. 시간의 질문들이 줄지어 따라간다. 결국 그대는 흑백사진의 한 장면으로 기억의 한쪽 면을 차지할 것이다. 영혼을 학대하기 위해 육신을 팽개쳐 버린 모습으로 내 앞에 섰을 때 나는 그대의 고통을 읽기에 앞서 가슴 아리는 절망으로 빠져들었다. 내 ...

09/1113  
서정윤 / 수채화로 그린 절망 2

이제 강가에는 아무도 없고 아직 그대의 절망은 끝나지 않아 나의 가장 아픈 곳에 남아 있다. 어쩌면 바람으로 흩어지고 싶어도 흙의 일을 흙으로 돌 리는 일과 하늘에 노을 그리는 일이 남았다는 핑계로 조금만 더 참아 달라고 지친 그대를 힘들게 한다. 강가에 선 나무들은 철새의 약...

09/1113  
서정윤 / 수채화로 그린 절망 3

우리는 전생에 어떤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았나. 말로도 남의 가슴에 상처주지 않고 미소로 그들을 도우며 그들의 고통으로 밤을 새웠다면, 다른 누가 우리의 다정함에 시기하는 말을 하늘에다 했는가. 그로 인해 이 생을 받았다면 자랑하지 말아야 했어. 내 삶이 남과 다름을 말하지 말아야 ...

09/1113  
서정윤 / 수채화로 그린 절망 4

자신을 잊기 위해 애쓰던 차가운 바람의 날들 말 못하고 돌아서던 순간이 있었다. 가슴속 수많은 단어들이 서로 먼저 나오려고 부딪치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초라하지 말라고 하늘의 푸른 절망이 먼저 손을 내민다. 내 가진 건 그대의 맑은 웃...

09/1113  
서정윤 / 생명이 계속되는 동안

구름은 어떤 슬픈 꿈을 품고 있기에 저렇게 우울한 얼굴로 나의 아픔을 새롭게 하는가. 새들의 울음이 목메이는 저녁 지나가는 모두가 아무 의미없이 그리울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자꾸 나를 부른다. 온 몸을 떨며 손을 흔드는 들꽃 그 옆에 나비가 그려지고 생명이 계속되는 동안 살아 있어야...

09/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