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시모음 _ 시시 

마경덕 | 죽은 피리 살리기  

저 쌍골죽 잎마른병을 버틴 병죽病竹이다 골이 파인 살이 단단하고 소리가 잘 여물었다 뚫린 구멍으로 선계仙界까지 불러들인다...

19/1109
마경덕 | 도장  

마마가 돌던 해 또래 중 혼자 살아남은 계집아이 곰보라는 놀림에 눈이 붓도록 울었다 엄마는 말했다 울지마라 곰보자국은 하나...

17/0209
마경덕 | 동전 몇 닢  

머리맡 자리끼가 얼던 밤, 윗집 종란이 아부지가 죽었다. 밥상을 엎고 장독을 깨부수던 종란이 아부지, 호롱불 아래 설빔을 마...

15/0308
마경덕 | 꽃과 밥  

뿌리 잘린 꽃들이 행복하다 대부분 꽃의 생각은 긍정적이다 양동이에 담긴 노랑은 철없는 色, 애송이 꽃집처녀도 봄바람처럼 ...

13/0424
마경덕 | 뒤끝  

버스 뒷좌석에 앉았더니 내내 덜컹거렸다 버스는 뒷자리에 속마음을 숨겨두었다 그가 속내를 꺼냈을 때도 나는 덜컹거렸다 뒤와 ...

12/1219
마경덕 | 글러브 중독자  

최동원 선동열을 벽에 걸었다 무쇠팔, 무등산 폭격기를 바라보며 커브와 슬라이더에 집중했다 그는 속도 개발자 한쪽 발을 들고...

12/1209
마경덕 | 양배추  

한 잎으로는 나를 주장할 수 없었어요 여러 겹이 되기 위해 하얗고 캄캄한 세상으로 들어가야 했어요 합류하지 못한 몇 장의 ...

12/1012
마경덕 | 자전거보관소  

인덕원역 자전거보관소, 환삼덩굴이 자전거의 목을 타고 오른다. 핸들에 빨간 장갑 한 켤레가 걸렸다. 저 장갑은 주인의 마지...

12/0909
마경덕 | 오래된 가구  

짧은 다리로 버티고 선 장롱 두 장정(壯丁)의 힘에 밀려 끙, 간신히 한 발을 떼어놓는다 움푹 패인 발자국 네 개 한 자리를 ...

12/0909
마경덕 | 집들의 감정  

이제 아파트도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푸르지오, 미소지움, 백년가약, 이 편한 세상… 집들은 감정을 결정하고 입주자를 부른...

12/0909
마경덕 | 나무말뚝  

지루한 생이다. 뿌리를 버리고 다시 몸통만으로 일어서다니, 한자리에 붙박인 평생의 불운을 누가 밧줄로 묶는가 죽어도 나무...

12/0909
마경덕 | 캔, 또는 can  

뽀빠이! 올리브가 외치면 통조림이 달려왔다. 시금치 통조림이 올리브를 구했다. 미국은 뽀빠이를 내세워 시금치를 팔았다. 단...

12/0715
마경덕 | 그때 거들을 입었어  

외로울 때면 거들을 입었어. 낯선 그 사내보다 외로움이 더 무서웠어. 허술한 아랫배를 꽉 조이고 그 남자를 만나러 나갔지. ...

12/0715
마경덕 |   

1호선 전철, 휠체어를 탄 걸인이 껌을 내민다. 손때에 까맣게 절었다. 늙은 사내의 두 손에 공손히 앉아있는 귀퉁이 닳은 껌...

12/0206
마경덕 | 연장통  

장례를 치르고 둘러앉았다. 아버지의 유품을 앞에 놓고 하품을 했다. 사나흘 뜬눈으로 보낸 독한 슬픔도 졸음을 이기진 못했다....

12/0206
마경덕 | 비파나무 그늘  

일제히 소인을 찍고 있는 나무들, 봄부터 쓴 장문의 편지들이 쏟아진다 허공에 쓰는 저 간절한 필체들 해마다 발송되는 편...

12/0206
마경덕 |   

문을 열고 성큼 바다가 들어 섭니다. 바다에게 붙잡혀 문에 묶였습니다. 목선 한 척 수평선을 끓고 사라지고 고요히 쪽...

12/0206
마경덕 | 시골집 마루  

마루는 나이를 많이 잡수신 모양입니다 뭉툭 귀가 닳은 허름한 마루 이 집의 내력을 알고 있을 겁니다 봄볕이 따신 궁둥이...

12/0206
마경덕 | 옥상  

도시의 옥상은 매력적이다 평수에 없는 땅을 배로 늘려 덤으로 준다 14평에 살아도 사실은 28평인 셈 하늘에 등기를 마친 ...

12/0206
마경덕 | 구름의 취향  

지상으로 귀향하는 저것들 추락하는 순간, 제가 태어난 곳을 알게 된다 까마득한 하늘로 유학을 떠난 것은 모두 되돌아오기 위...

12/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