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디오

정현우 - 멍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따귀를 맞았다. 맨발로 집을 뛰쳐나왔다. 넝쿨이 울창한 성당은 멍든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떨어진 포도알에는 천사의 날개가 들어 있을지도 몰라 맨발로 밟았다. 자줏빛 혈관을. 첨탑 사이로 빠져나가는 구름과 그늘에 접힌 종소리를, 멍든 뺨을 어루만졌다. 발목으로부터 터지는 울분, 어둠에도 무게가 있다는데, 발자국을 내버린 까마귀의 허공, 슬쩍 날개 대신 다리를 내민 천사의 오후, 천사들이 가져가는 몫은* 포도의 주검과 시간 사이, 양손으로 한움큼 포도알을 담아 천사에게 내밀었다. 무질서하게 열리는 마음, 포도알을 입안에 넣으면 감돌다 마는 천사의 피 맛, 바닥에 숨이 붙어 있는 포도알이나 영혼이나 모두 썩고 나면 그만인데, 뒤로 물러서는 천사의 침묵. 미사를 마친 사람들이 알약처럼 쏟아져 나왔다. 정적 속에 숨어 있는 포도 씨. 멍울을 깁다 보랏빛이 얇게 잡히는 멍의 끝, 더이상 오를 곳 없는 햇빛에 구부러지는 포도 넝쿨들.



* 천사들도 술을 마신다. 포도주가 오크통에서 숙성되는 동안 일부는 공기중으로 사라지는데, 이를 '천사의 몫'이라고 한다.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창작과 지평사. 2021년

(February 28th 2021)  /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