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디오

김승하 - 시들, 시들한 시들

실직하고 마누라 눈치 보며 쓰는 시
끊었다 피었다 하는 담배 같은 시
시들시들한 시를 쓰는 일은
시멘트 바닥처럼 딱딱한 동토에
깨알 같은 무씨를 심는 것
그러나 언젠가 다시 푸릇푸릇 돋는 무순처럼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며 쓰는 시
시가 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던 일
텃밭에 심어 놓은 푸성귀같이 시들시들한 시들,
나이 쉰도 안 되어 문지기나 되어 쓰는 시
나이 쉰이 다 되도록 시집 한 권 출간 못 한 시인의
주머니 속 휴지에 쓴 구겨진 시들
밥이 되지 못하는 시들



<저문 바다에 길을 물어>
달아실. 2018년

(February 11th 2019)  /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