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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 - 데이지의 인생

다 마찬가지 아닐까. 한 번이라도 만나면, 그때마다 한 가지 추억이랄까, 공간이 생기잖아. 그것은 언제든 살아 있는 공간이고,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 세상에 절대 없었을 것이기도 하고, 인간이 무에서 만들어낸 것이니까. 댐이나 로켓같은 것도 똑같지. 사람과 사람이 아무것도 없는 데서 창조해 낸 세계잖아. 하늘이니 운명이니 하는 것이 사고를 빌미로 우리에게서 그를 빼앗아갈 수는 있어도, 영원히 그 즐거웠던 시간을 빼앗아 갈 수는 없으니까 우리가 이긴거라고 생각해.
- 「목 이야기」 중에서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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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살 데이지는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없었다. 이모 부부와 함께 야키소바 가게를 꾸리며 어린 데이지를 키우던 엄마는 비가 심하게 내리던 날 데이지를 태우고 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죽어가는 엄마를 사고 현장에서 지켜 본 데이지는 그때의 경험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남다른 생각을 품게 된다. 그리고 그런 데이지는 늘 꾸는 꿈과는 사뭇 다른 꿈을 만나고, 그 꿈이 그의 유년시절 둘도 없던 친구 달리아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걱정하거나 불쌍하다거나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거기까지 였던 것이다.

누군가가 떠 나간다는 것은 어쩌면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슬픔이 되어야 마땅할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데이지는 그렇게 생각하자 않았다. 그래서 그것이 신비해 보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분명 같이 했었는데, 분명 함께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래, 어느날 갑자기 죽은 엄마. 허름한 그 새집으로 이사가던 날 브라질에서 날라 온 죽은 달리아의 사진들과 함께, 그 새집에 들어가던 날. 데이지는 모든 것들을 깨달은 듯, 사진들도 바닦에 내려놓고 새로운 친구인 다카하루가 설ㅊ티 해놓고 간 냉장고를 바라본다. 엄마가 그렇게 떠나고 이모 부부를 만나는 것처럼 인생이란 게 누군가가 떠나가면 또 다시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것이란 것을 데이지는 그때서야 알았으리라. 그래도 책을 덮으면서 다행이었던 것은 엄마가 떠나고 이모 부부를 만났고, 달리아가 떠나간 자리를 다카하루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함께한 추억들과 시간들과 공간들은 늘 그렇듯 제자리에 있지만 그것을 새롭게 채워줄 누군가가 없다면 인생이란 게, 삶이라는 게 참 덧없을 테니까.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누구에게 말하지 않아도,
그리고 내가 죽어도 그 상자가 있었다는 사실만은 남으리라.
우주에 둥실 떠 있는
그 상자의 뚜껑에는
'데이지의 인생'이라 쓰여 있으리라.
- 「목 이야기」 중에서 p.118

(January 26th 2019)  /  책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