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디오

장석주 - 일요일의 저녁 날씨(October 17th 2018)

당신의 등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당신은 먼 곳이었으니까, 설사
우리가 연인이나 자매 사이였다 해도 괜찮다.
실컷 울고 났더니 얼굴이 사라졌다.
당신이 오지 않았으니
내 몸통에 비늘이 돋았다 할지라도
나는 괜찮다.

웃음과 행복이라면 별로 궁금하지 않아.
오래 웃지 않으니 가면으로 변한 얼굴,
나는 가정식 백반 집으로 밥을 먹으러 간다.
구백구십팔 번째 실패를 넘어 천 번째 맞는 실패를
기뻐하라, 실패가 다정해질 테니까.
깃털보다 무겁고 꽃잎보다 우울한 표류,
시를 붙잡기는 어려웠다.
가족들은 멀리 있었고
나는 물풀 아래 알을 낳고 새끼를 키웠다.

새처럼 지저귀는 당신은
비밀들을 누설하는 풍자가인가요?
아니면 독설가입니까?

시가 아주 멀리서 오는 저녁,
내가 일요일의 저녁 날씨에 따라 변할 것 같은가?
나쁜 날씨가 생의 대부분을 망쳤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로
푸른 이내와 기침 소리, 모호한 웃음소리
따위를 데리고 오는 저녁의 날씨,
물론 오늘 저녁이 불행의 처음은 아니었지.
만질 수는 없으나 느껴지는
수많은 일요일의 저녁들,
시가 온다.



<일요일과 나쁜 날씨>
민음사.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