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디오

유현아 - 내 가방 속 그림자 DATE : 100418

내 그림자가 하나일 거라는 고정관념은 버리는 게 좋아 처음부터 그림자가 많았던 건 아니야 너희들이 그림자를 잊고 지내는 동안 너희들의 그림자를 주웠을 뿐이야

밤이면 가방 속 그림자들은 기지개를 켜며 하나씩 튀어나오지 그리고 어느 틈엔가 창문이나 틈새에 딱 붙어 있어 그들의 일상은 붙어 있는 거야 유리창은 그림자들의 훌륭한 장막이 되기도 해 가끔은 유리창 너머로 슬며시 사라지기도 하지만 걱정 없어 내 가방 속에는 아직도 그림자들이 우글우글하니까

우울할 때면 난 가방 속에 숨겨놓았던 그림자들 중 하나를 골라 공연을 하지 그림자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본 적 있니 보고 싶다면 언제든지 초대해 줄 수 있어 하지만 너의 그림자라고 착각하지는 마 내 가방 속에 들어온 이상 너의 것은 없으니까

내 가방은 그림자들로 꽉 차 있어 어느 때건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주지 변신의 능력이 무궁무진한 그림자들이야 울고 싶을 땐 웃음의 방식으로 그림자를 펼치지 슬픔의 모양은 어울리지 않아

잠깐, 가끔씩 뒤를 돌아봐 혹시 아니 내가 너의 그림자를 줍고 있을지



<아무나 회사원, 그 밖에 여러분>
애지시선. 2013년

나무

놀라울 만큼 비슷한 느낌들, 단어들.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