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디오

정다연 - 네가 둥근 잔에 입술을 댈 때

후드득 소나기가 내리고
벤치에 앉아 졸다 화들짝 놀란 사람은
신문지를 놓치고
아주 조금 젖지
아주 잠시 하늘의

기울어짐

네가 둥근 잔에 입술을 대어
한모금의 포도주를 넘길 때
쿵,
내려놓을 때

나무 아래서
잠자던 박쥐들은 갈증에 눈뜨고
입 벌린 악어가 있는
강물 속으로 뛰어들지 퐁당퐁당
못 견디지

네가 네 입술의 문양이 묻은 둥근 잔에
마침내 영원히 두 손을 뗄 때
배고픈 악어의 허기는 풍족해지고
피자두 가 피자두로 익어가면서

지상으로 추락하는 폭발을 기다릴 때

나는 그 아래 서서 뜬눈으로 입을 벌리지
네 잔과 내 잔이 부딪힌
짧은 순간
깨지며 달아난 영혼의 총성을 듣지

잔이 넘친다
삼켜지다 만 젖은 박쥐떼가 떤다 떠오른다
내가  네 둥근 잔에 내 입술을 포개면



<시작 : 詩作하는 사전>
창작과 비평. 2020년

(February 6th 2021)  /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