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디오

신영배 - 애인에게 편지를 썼다

애인에겐 문법이 없고,
문법이 없어서 애인에게 닿을 수 없다

달밤이라고 썼다

구두가 나에게 달을 설명했다
바닥에 고인 물은 구두와 춤추는 달
다가갈수록 물은 어두워지고 춤은 환해지고

모자가 나에게 달을 설명했다
벽에 부딪치는 음악은 모자가 흔드는 달
음악이 점점 넓어지고 귀 그림자가 점점 커지고

달은 없고, 애인에게 편지를 썼다

구두와 모자 사이에 달
사이에 꽃병을 그렸다
사이에 물송이를 피웠다

달은 보여줄 수 없고, 애인에게 편지를 썼다

꽃병 안엔 달이 들어 있다
꽃병을 설멸하기 위해
꽃병은 설명될 수 없고,
달밤이었다

꽃병을 기울이고 달을 썼다

물송이와 구두가 걸어갔다
물송이와 모자가 날았다

애인에게
나는 물송이와 움직였다



<물안경 달밤>
문학과 지성사. 2020년

(January 4th 2021)  /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