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디오

권민경 -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추모는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거야
너는 말했다
나는 추모하는 법을 몰라
종종 앓는다

쓰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외면하는데
곁눈질 곁눈질

하늘이 가까운 새벽
눈이 내린다

검은 코트를 입고 나가야 할까봐

우리가 사귄 지 칠 년하고도 팔 일. 그동안 많은 일들 많은 죽음들.
너는 나를 이끌고 종종 추모하러 나섰다. 그건 너 자신을 위한 일이었겠지만
어설픈 흉내 버스와 전철을 몇 번씩 갈아타는 품이 드는 일 땡볕에 오래 서 있는 것으로
멍청하게도 잠깐 앓지 않을 수 있었다. 멍청하다는 건 내가 내 몸안으로 돌아왔다는 것인데

메모리얼 파크에서 돌아오는 길.
낙지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짬뽕을 먹었다.

그렇게 되고 싶어
가까이 웃고 짬뽕을 먹고
죽은 뒤 서로에게 깃들지 않겠다 약속 하는 사이
악한들의 동맹처럼 우리는 불안한 평온 속에 살아가겠지만

내 영혼이 어딘가 가닿기를
누군가에게 아주 잠시 깃들었다가
버스를 갈아타고 신호등을 건너는 사이에 떠나버리거나

새끼손가락 끝마디에 매달려 있다
채칼에 쓸려 톡 떨어져나가거나
무채를 종종 썰고
피가 몇 방울 떨어지고
떨어지고
눈이 몇 번 내리고
검은 코트를 드라이크리닝 맡기며
서서히 떨어져나가길
내 영혼이 누군가에게 너무 오래 깃들진 않길

잠깐 발을 들여놨다가 빼는 것 정도는
서로 눈 감아줍시다
조금만 이해해줍시다

요새의 영혼
나에게 가까워서



* 넥스트, <The Dreamer>에서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
문학동네. 2018년

(September 16th 2020)  /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