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디오

권지영 - 오 촉 전구 같은 사람

깜빡 깜빡 점멸되는 형광등처럼
잊은 듯 만났다가
다시 헤어져도
크게 아쉽지 않은 사람

집에 가는 길
갑자기 차가워진 바람에 문득
어묵 같이 먹고자 할 사람

못난 속사정 다 얘기하고
밤새 들어주고 나누어도
하나 부족할 게 없는 사람

간절함으로 부르는 이름이 아닌
가볍게 흘려버리는 인연

백 촉짜리 번쩍이는 찬란함이 아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반짝
바로 눈앞을 밝힐 수 있는
오 촉짜리 빛이 되는 사람

바람에 스치듯 지나가도
언제든 생각나면
좋은 사람



<아름다워서 슬픈 말들>
달아실. 2020년

(August 26th 2020)  /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