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디오

박은영 - 쑥

넓은 들판이었다

우물가 동백꽃도 다 떨어진 조용한 오후였다

먼 들판을 보고 있으면 입안에 쓴 물이 고였다 산 벚나무 환하게 눈을 뜨는 봄마다 어린 쑥의 시린 발꿈치를 어루만지던 어머니, 바위인 듯 봉분인 듯 살아온 세월만큼 더딘 걸음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당신은 갈라진 손끝은 푸른 물이 배고 대소쿠리는 이른 봄으로 묵직했다

쓰디쓴 봄의 흔적을 지우고 쑥 꽃 피던 날, 햇빛을 등지고 웅크린 어머니, 내 가슴 깊은 곳에서 된장 뚝배기가 끓고 찰진 떡 치대는 소리가 났다

엄마 엄마 부르면
꽃대 같은 고개를 들어 낭창거리고
월남치마를 동이듯 잡으며
다시금 몸을 숙이던 유년의 어느 저편

까막눈 당신은 저물도록 대지를 읽어 내려갔다 추운 겨울을 견뎌낸 쑥이 눈물 콧물에 버무려지고 있었다 개구리 우는 논두렁을 지나 산 벚꽃 흩날리는 들판을 내달리다 넘어진,

어린 무릎에 쑥물이 든 시절이었다



<구름은 울 준비가 되었다>
실천문학사. 2020년

(May 16th 2020)  /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