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디오

이제니 - 사막의 말

기억은  언제나 사막에서부터 시작된다. 끝없이 허물어지는 모래 언덕과 모래 언덕,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미지의 지평선, 오직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만날 수 없는 고독 속의 고독, 고독 끝의 고독. 나는 나 자신의 좌표를 더듬거리며 열사의 사막 한 가운데 서 있다. 누가 과연 자신의 위도와 경도에 대해 정확히하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떠내려가고 있는데, 미끄러져가고 있는데, 과거에서 미래로, 미래에서 과거로.

너는 사막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것은 이상한 체념이 섞인, 어딘가 과거의 사람 같은 어투였다. 말하는 순간 벌써 과거의 일이 되어버리는 듯한, 이제 막 죽어버린 무언가를 바라볼 때의 느낌 같은,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허공을 향해 부질없이 손을 뻗어보는 것과 같은. 나는 대답 대신 이후로 한 번도 너를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실재하지 않지만 실재한다고 느낀다면 그건 죽은 게 아니잖아. 언젠가 너는 흘러가는 눈길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사막의 울음소리 또한 그와 다르지 않겠지. 나는 녹지 않는 눈길에 대해서 알고 있고 부드럽게 위로하는 눈길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어제는 꿈에서 너를 봤는데 너는 마지막으로  만났던 그 나이 그대로. 나는 그 후로도 줄곧 나이를 먹었지. 우리는 길을 걷고 있었고 나는 고르지 못한 쪽으로 걷고 있었고 너는 내가 눈치채지 않도록 좀 더 반듯한 쪽으로 자리를 바꾸어 주었고. 예전에 우리 함께 빗길을 걸을 때도 넌 웅덩이 쪽으로 걷고 있던 내 팔을 슬며시 네 쪽으로 당겨주었지. 눈이 오지 않았지만 잊을 수 없는 눈길 같은 것도 있는 법이다. 단 한번 만났을 뿐인데도 잊을 수 없는 눈길 같은 것도 있는 법이다.

사막의 울음소리, 그것은 존재의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음악이지요. 존재가 견딜 수 있는 한계의 극점에서 만나는 소용돌이 속의 고요, 삶의 비의를 밝힐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 들려오는 침묵의 입자들의 연주, 그 어떤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그 어떤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순수한 기표, 그 모든 기의를 앞질러가는 숭고한 이미지, 그것은 어쩌면 죽음의 순간에나 목도라게 되는그 무엇인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사막의 울음소리를 종이 위에 단단히 고정시킬 수 없을 때 사막의 울음소리에 대해 아무런 말도 찾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조용히 입을 다무는 수 밖에. 입을 다물듯 끝없이 말하는 수밖에. 너는 어떤 질문 하나를 너의 책에 남겨둔 채 사막으로 떠나 두 번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네가 떠나고 나서야 나는 체온이라는 낱말에는 실제로 어떤 슬픈 온도가 만져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깨달음이 후회라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시인수첩>
2012년 겨울호

(March 15th 2020)  /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