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디오

황유원 - 총칭하는 종소리

빗속에 울리는 종소리
그것을 우중(雨中) 행군이라 총칭한다
모든 것을 총칭하느라 아주 멀리까지 퍼진 종소리가
좍좍 비를 맞으며
불완전 군장으로
판초도 없이 푹
숙이고 간다
속옷까지 젖어 버린 종소리
이 지경까지 헐벗은 행군
종소리는 좌우로 밀착하고 종소리는 불현듯
천둥을 함축한다
구름을 소화한다 번개를 배출한다
전투기를 잡아먹고 초음속 비행하는 소리를 흉내 내는 구름들
과거시와 현재시와 미래시를 압축하고 속으로 깜빡깜빡 비상등을 켜 보며
격추당하는 소리를 흉내 내는 삐뚤빼뚤한 사선들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고요
종 속에는 기합이 모여들지요
총동원할 것
물집을 식량을 다양한 군사 지식을
뭉쳐서 장음(長音)이 되는 온갖 단음(短音)들을
이를테면 바다가 넓은 줄 알아 무한정 마셔대는 고래들*처럼
불가능을 진동시키며 오로지 웅웅거림으로써만 기능할 것
집중된 독재자의 연설
뻗어 나간다
마이크 없이
온몸을 마이크로 쓸 줄 알아서
퍼붓는 빗속에 플러그를 꼽아 버리며
종은 종 안의 인간을 여기 다 풀어놓기로 한다
종소리는
죽지 않는다 낙오하지 않는다 오직 적멸에 들뿐
푹 젖은 상하의 탈의하지 않는다
그 앞에 고개 숙이고 땅바닥에 최대한 가까워져
절하는 세상 모든 빗소리들
그 대량의 고개 숙임들 위로 종은 또 한 번 와락 종 속의 내부를
쏟아내고야 만다
귓구멍 속으로 기어들어가 장착되고
만장일치로 폭발을 시도하기로
이제 제발 작작 좀 해라
세상의 장단에 좀 놀아나면 어때
해가 좀 뜬다
계급도 군번도 없다
빗소리 잦아들어
이때를 경배하라
마른 종의 침묵이 귓속 심해로 가라앉는 소리
속에서 쫙
벌어진 채 다시는 붙지 않는
다리처럼 턱관절처럼
연한 식물의 줄기들 같은 흔들림 속에서
쥐 죽은 듯 취침할 것
좌로 취침하든
우로 취침하든
아무려면 어때
그것을 궁극의 잠꼬대라 총칭한다
이것이 내 몸에서 난 소리라는 사실에 뒤늦게 놀라 뒤틀리며
그 놀람이 내려친 맑음 속에서
골 때리도록
골 때리도록
이토록 청정한 무량광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너라는 운해에 스며들고 있었다
운해의 성분들을 뒤엎고 갈아치우며
도처에서 세워지고 무너져 내리는 음향의 적멸보궁이 되어
와라
와서 나의 극광이 되어라
허공 속으로 쫙
찢어지는 번개처럼
한달음에 달려가 두 눈 꽉 감고
최선의 소리로
최전선의 소리로
확! 거기 뛰어들어라 울려 퍼져라
두 발 쭉 뻗어 버려라
가서 너의 극락이 되겠다



* "鯨知海大無糧飮", 出處未詳

<세상의 모든 최대화>
민은사. 2015년

(February 2nd 2020)  /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