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디오

곽효환 - 너는

비에 젖은 통영에 가서 얼마간 머물고 싶다고 했다
너는
날이 춥고 바람 차다고 옷을 단단히 입으라고 했다
나는

바람을 갖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게 어렵다고
한꺼번에 울지 않기 위해
아침부터 조금씩 나누어 울었다고 이제
더 이상 소리 내어 울지 않기로 했다고
너는
젖은 나무껍질 냄새가
몸 구석구석에 배어 지워지지 않는다고
아직 잎새를 다 떨구지 못하고
우두커니 겨울을 맞는 나무 한 그루에
나, 라고 이름 붙였다고 했다
너는

미세먼지 가득한 연무에 싸인 겨울 도심 공원
걸음마다 마른 잎새가 바스락거리며 내려앉았다
멀리 왔다고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고
조금은 쓸쓸한 것도 괜찮다고 했다
나는

너는, 나는
많이 싸웠어야 했다
불확실한 위험과 시련에서
등 돌리지 말고 도망치지 말고
그 차오르는 말들을
그 세세한 기억들을
그 기적 같은 감정을 지키기 위해
한때 가까웠던 우리는
더 많이 더 열렬하게 싸웠어야 했다

아무 데도 없으나 어디에나 있는
너라는 깊고 큰 구멍



<너는>
문학과 지성사. 2018년

(November 27th 2019)  /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