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디오

황학주 - 참 예쁘다 못난 시

그만 자,
라는 찡한 말
분장을 지우고

물 한 모금, 행을 맞추고 혹은 나누고
잘 자
사이렌 소리 들으며 그만 이대로
시를 쓰는 밤에 나오는
그 말

참 예쁘다

빗물에 고인 이층집
일층과 이층 어디에서
모두들 나뭇잎 한 장으로 잠에 들 때

정거장에 나가 있는 얼굴이 아까운 가을이여
마음을 돌리고 전화번호조차 갖지 않은 사람의 불빛은
작달비를 건널지

결코
죽음과
날마다 나란히 일어날 테니
눈먼 내일을 둘러볼
양초 토막이 찾아보면 어디 없을까

간유리를 통과하지 못하는
빛에 알맞은

사는 일의 행간엔 죄다 시 쓰는 사람뿐이라 해도
참 예쁘다 못난 시



<사랑은 살려달라고 하는 일 아니겠나>
문학동네. 2019년

(November 9th 2019)  /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