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디오

김수진 - 시골에 산다는 것은

아침에 일어나 오래도록 바라본 천장을 매트삼아 한바탕 눈으로만 요가를 해도 아무도 모르는 일

아침밥은 이것이 지청구인지 토끼풀인지 쇠고들빼기인지 모를 풀을 똑 똑 모가지만 따 쫑쫑 쓸어 찬밥에 고추장 참기름 쓱쓱 비벼 먹어도 되는 일

아무것도 심지 않은 텃밭에서 민들레 이파리 뜯어 찬물에 담가놓고 살짝 데쳐 된장 조금 들기름 조금 으깬 마늘 조금 조물조물 먹어도 되는

따스한 햇볕 들어 나무 아래 그림자 채워지면 그제야 옹기종기 모이시는 동네 할머니들과 농담을 밥 먹듯 먹으며 한바탕 웃어도 좋을 일

들고양이가 레오라도 되는 듯 뛰놀던 밀림이 아니라 뒤꼍에서 ‘얘들도 분명 이름이 있을 텐데 미안’을 되뇌며 흙색으로 바래버린 목장갑에 생을 마감하는 풀들을 정리하느라 오후 내내 시간을 보내도 괜찮은

그러다 문득 읽고 싶은 책 들고 지붕 아래 접시꽃 가득 핀 초록으로 촘촘히 박힌 뽕나무 아래에서 읽어도 할 일 없어 보이지 않은 그런

저녁 일곱 시 가벼운 차림에 빠른 걸음으로 동네 산책 가듯 저녁노을 내릴 때까지 풀들과 하이터치 일하시는 동네 분들께 나를 알리듯 인사하며 운동해야 보람찬

저녁엔 TV도 없으면서 인터넷으로 영화 한 편 봐야지
작년에 담근 대추주가 달큼하게 익었으니 우리 집 담벼락으로 몰래 넘어 온 옆집 호박 하나 따 부침개를 해야지
알싸한 앞 집 부추 서리하듯 뜯어다 썰어 넣어도 되는
그래도 되는 일

늦도록 별빛 밤하늘에 새겨지는 것도 모른 체 옆집 할머니 끌끌대시던 도시 것들 깜짝, 와- 놀래던 은하수도 한 잔, 그렇게 달큰하게 물드는 일

시골에 산다는 것은 이토록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일



<인간과 문학>
가을호. 2019년

(November 2nd 2019)  /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