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디오

박재연 - 재녕 씨의 안녕

사람 좋은 재녕 씨가 몸보신이나 하라며 개고기 서너 근을 베어왔네
나는 전날 법흥사에 가서 백팔 배를 하고 왔다며 정중하게 사양했지
현관문을 열고 허리를 반 쯤 수그려 문 앞에 놓으려다 다시 들고 나가는 재녕 씨

겨울이 되자 알밴 개구리를 비료 포대로 가득 잡아 놓았으니 먹으러 오라고 전화가 왔네 살생은 싫어요 개구리는 사람같이 생겼잖아요 두 번 사양했네 전화기 안쪽에서 섭섭하게 쓸어가는 산골바람 소리

두어 달 지나 이번에는 럭비공만 한 타조 알을 들고 집으로 찾아왔네 세 번 사양하면 사람의 도리가 아니잖아요 타조 알을 조심히 받았네 커다란 냄비 안에서 콩탕콩탕 끓어대는 타조 알 슬슬 농담을 걸어오네

이웃집 오리와 등이 맞은 암탉이 있었대
날마다 남편 수탉에게 매를 맞으며 살았다나
어느 날 오리 알을 낳다가 그만 죽었다는 거야

죽은 암탉보다 오리놈이 더 나빠 암탉 편을 드는 사이 부글부글 끓던 타조 알이 그만 냄비 둑을 타고 넘쳐 싱크대가 벌창이 됐네

잘 먹었느냐고
아주 잘 먹었다고
하회탈처럼 웃으며 물으니 더 미안하잖아요

귀한 선물을 난감하게 받아서 타조 알은 넘쳤네
농담을 모르는 내게 농담을 걸어와서 타조 알은 넘쳤네



<텔레파시폰의 시간>
한국문연. 2018년

(April 3rd 2019)  /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