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디오

기형도 - 병(October 15th 2018)

내 얼굴이 한 폭 낯선 풍경화로 보이기
시작한 이후, 나는 주어(主語)를 잃고 헤매이는
가지 잘린 늙은 나무가 되었다.
가끔씩 숨이 턱턱 막히는 어둠에 체해
반 토막 영혼을 뒤틀어 눈을 뜨면
잔인하게 죽어간 붉은 세월이 곱게 접혀 있는
단단한 몸통 위에,
사람아, 사람아 단풍든다.
아아, 노랗게 단풍든다.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 지성사. 199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