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시모음 _ 시시 

장석남  -  치졸당기

이젠 잠자리에 들어서도 반성이랄 것도 없이 그냥 배가 부르면 배가 부른 채로 부른 배가 부른 잠을 그대로 받아 안는다.

올해도 몇 그루의 나무들을 사다가 차례도 질서도 없이 계단 앞에 묻어 본다. 사과나무, 배나무, 불두화, 석류, 매화, 넝쿨장미…… 모두가 살아난다면 이 좁은 마당은 얼마나 치졸해질까?  그러나 그 치졸을 나는 즐기련다.

속물은 할 수 없다. 잠 속에도 이것저것을 묻어둔 모양이다. 어떤 때는 여자가 보이고 또 어떤 때는 돈다발이 보이기도 한다, 안팎 빨갱이가 있다더니 안팎 속물들과도 별 수 없이 어울리고, 웃고, 거래한다, 뭐 좀 서로 속여보자는 속셈이다. 이름자라도 팔고 돈냥이라도 좀 얻어먹어보자는 속셈이다, 참, 차례도 질서도 없이 피어나는 잠 속의 종이꽃들.

이젠 잠이 깨어서도 막막함이 없다. 막막하기 전에 신문지를 찾고 막막하기 전에 마당에 심은 치졸들을 들여다보고 막막하기 전에 시를 읽는다, 시를 읽는다, 막막하기 전에 강의를 듣고 막막하기 전에 뭐 또 가르칠 만한 게 있다고 학생들 앞에까지 나선다, 막막하기 전에 술을 마신다, 막막하기 전에 취하고, 막막하기 전에 잠을 부른다, 배가 불러도 반성이랄 것도 없다, 부른 배가 부른 잠을 그대로 받아 안는다.

멀리서 호오이 호오이 밤새가 운다. 저것이 비명이란 것도 모르고 나는 잠을 자고 있었구나,

(March 7th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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