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시모음 _ 시시 

손택수    /    아버지와 느티나무

아버지의 스무살은 흑백사진, 구겨진 흑백사진 속의 구겨진 느티나무, 둥치에 기대어 있다 무슨 노랜가를 부르고 있는지 기타를 품고, 사진 밖의 어느 먼곳을 바라보고 있는지 젖은 눈으로, 어느 누군가가 언제라도 말없이 기대어올 것처럼

한쪽으로 비스듬히 누운 느티와 함께 있다 나무는 지친 한 사람을 온전히 받아주기 위하여 그렇게 기울어 간 것이나 아닌지, 쓰러질 듯 기울어가면서도 기울어가는 둥치를 끌어당기느라 뿌리를 잔뜩 긴장하고 서 있는 것이나 아닌지

그 사람들 등의 굴곡에 가장 알맞은 모습으로 기울어가기 위하여 한평생을 고단하게 쓰러져갔을 나무, 풍성한 머릿결을 바람에 비다듬고 내가 알 수 없는 노래에 수만의 귀를 쫑긋거리고 있다 구겨지고 구겨진 흑백 속에서도 그 노래 빳빳하게 살아 있다

언젠가 구겨진 선처럼 내 몸에도 깊은 주름이 패이면, 돌아갈 수 있을까 저 생생한 한 그루 아래로, 돌아가서 당신을 쏙 빼닮았다는 등허리를 아름드리 둥치에 지그시 기대어볼 수가 있을까

처음 나무는 낯선 나를 의아해하겠지만, 한줌의 뼈를 품고 지쳐서 돌아온 나를 알아보지 못해 어리둥절해 하겠지만, 구겨진 생의 실핏줄마다 새순 같은 초록물이 번지고, 몸과 박동음과 물관을 타고 오르는 은지느러미 미끄러운 물소리가 다시 눈부시게 만나는 한때

나무는 이내 알게 될 것이다, 약간 굽은 내 등의 굴곡을 통해, 무너져가는 가계를 떠맡은 채 일찌감치 그의 곁을 떠나간 청년 하나를, 그가 꾸다 만 꿈과 슬픔까지를

어쩌면 흑백의 저 푸른 느티나무 아래서 부를 노래 하나를 장만하기 위하여 나의 남은 생은 온전히 바쳐져도 좋을는지 모른다 사진 안에 미처 들어오지 못한 어느 먼곳을 향하여 아버지의 스무살처럼 속절없이 나는 또 그 어느 먼곳을 글썽하게 바라보아야 하겠지만

한줌의 뼈를 뿌려주기 위해, 좀더 멀리 보내주기 위해, 제 몸에 돋은 이파리를 쳐서 바람을 불러 일으켜 주는 한 그루, 바람을 몰고 잠든 가지들을 깨우며 생살 돋듯 살아나는 노래의 그늘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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