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시모음 _ 시시 

곽재구  -  풍경 1

배추꽃이 노오랗게 핀 황토밭을 바라보면 아름답다. 김병연이란 왕조 시대의 시인은 이곳 무등산 기슭에서 삿갓을 베고 눈 속에 묻혀 죽었다. 그것은 관념이다. 아무도 그의 죽음을 본 일이 없는데 우리들은 그 자리에 삿갓을 씌운 돌비를 세웠다. 그날 밤 젊은 수배 학생 하나가 이 황토밭을 쫓기다가 죽었다. 까맣게 부패한 얼굴 튀어오른 눈알은 컬러 사진이 되어 터미너로가 지하철역에 깔리고 그날 밤 한 청원 경찰은 저수지에서 가물치가 튀는 소리를 들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정확히 첨벙 하는 그 소리를. 그러나 사람들은 곧 잊을 것이다. 배추꽃이 지면 메꽃이 피고 메꽃이 지면 들국이 피고 들국이 지면 눈꽃이 피리라. 그리하여 몇 년 후쯤 한 수배 학생이 쫓긴 저수지가에 그의 시신을 덮은 거적 밖으로 드러난 진흙 구두의 모양을 본뜬 이 세상 허망한 돌비 하나 세워지리라.

(January 9th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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