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시모음 _ 시시 

곽재구  -  종점

학교를 졸업한 지 십오 년 만에
우리들은 처음 모였다
다다미방에 덧니가 드러난
게이샤의 사진이 걸린 정종집은
진눈깨비 속에서도 북적대고
술 한잔을 서로 돌리며
우리들은 잃어버린 우리의 근황을 이야기했다
증권회사 차장이 된 영철이는
하룻밤 50만 원이라는 여자 탤런트 이야기를 하고
청소 시간이면 도맡아 청소를 하던 수영이는
검사가 되어 영감님 하는 호칭과 함께
술잔을 받았다
한 달에 기백만 원 봉급을 받는
성형외과 전문의가 된 형근이는
돈을 아싸리 벌기 위해 성남 어딘가에 개업을 하고
그 놈이 골마리를 잡으며 직접 설명하는
여자들의 별난 수술에 우리들은 마냥 낄낄거렸다
바이올닌을 하던 형수는
제너럴모터스의 지분이 50%인 자동차 회사 과장이 되어
노조의 불순성과 구사대의 불가피성을 역설하고
여당 국회의원 비서가 된 성모는
그 와중에서도 내 정치 성향을 떠보았다
그날 밤 쓰레기가 된 별들이
충장로 3가의 밤하늘을 덮었다
구더기와 시궁창과 온갖 찰거머리의 불빛들이
우리들 추억의 창가에 방뇨를 했다
이제 삶은 끝나고 죽음이 시작되었다
진눈깨비가 소리치는 하늘 한쪽에서
내려온 누군가의 억센 손 하나가
우리들의 더러운 술상을 뒤엎었다.

(January 9th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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