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시모음 _ 시시 

황인숙  -  서글프고 피로한

우리는 노래를 불렀다.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한껏 고개를 잦히고.
나무들이 웃으며 쓰러져왔다.

(우리 중 한 사람은 갈 곳이 없다)

나무들의 톡 쏘는 향기가 자욱한 공원.
우리의 왕초 달님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우리는 네 개의 달.
네 그루의 나무, 네 마리의 이리.
도시는 멀리 발 아래 잠들어 있었다.

(우리 중 한 사람은 갈 곳이 없다)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희미한 옛사랑이 노래
기운을 복돋는 노래
돌아가며 부르고 입을 모아 부르고.
여름밤이었다.
하지만 여름밤이었다.
밤은 금방 조그매졌다.

우리들 여기에 발을 모으고
잠들어서는 안 될까?
밤의 나무들이 벌목되고 있다.
낮 내내 마를 풀들이
하루 치의 이슬을 거둔다.

(우리 중 한 사람은 갈 곳이 없다)

"한 밤을 보냈군."
"어디로 가세요?"
"모르는 게 좋아요."
"네, 그럼......"

담배를 눌러 끄고 그는
벗어놓은 구두를 찾아 신고
단단히 끈을 조여맨다.
태양빛 속에는
그를 쫓는 개들이 킁킁거린다.

우리 중 한 사람은 갈 곳이 없고
우리의 스커트는 너무 좁았다.

(January 9th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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