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시모음 _ 시시 

황동규  -  지상의 양식

토요일 오후 혼자 있을 때만이라도 한번 다르게 살아보려고 나하고도 달리 살아보려고 주말이라 주차장이 비어 일부러 아파트 제일 먼 곳에 차를 세우고 걸었다. 한 동(棟) 화단에 영산홍들이 때맞춰 환하게 피어 너무 피어 시드는 기색 있는 놈을 막 지나자 어째 이리 됐지? 반으로 깨어져 속이 드러난 ‘우는 벤자민’ 분 빛나는 잎 멀쩡한 줄기 밑에 뿌리가 서로 감고 얽고 눌러 큰 뱀에 조여 울부짖는 삼부자(三父子) 조각(彫刻) 라오콘! 바티칸 박물관 한 귀퉁이 비틀린 공기 저 고통의 기호(記號), 잎새 빛나는 저 나무마다 그 기호 하나씩 흙 속에 숨기고 있다면! 고통 없는 곳은 혹시 이 지상(地上)이 아닐지 모르겠다고.

(January 9th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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