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시모음 _ 시시 

이성복  -  선풍기

한 여름 푹푹 찌는 찜통 같은 날 팥죽처럼 흘러내리는 땀을
손바닥으로 훔치며 선풍기 바람을 쐬어 본 사람은 안다,
그건 바람이 아니라 끈끈한 불덩어리임을

최고속으로 돌려도 모자라 온통 벗어젖히고,
날개 바싹 당겨놓고 온몸과 머리가 멍멍하도록
바람을 맞으면, 맞을수록 하루 버티기가 장난이 아님을

바람 한 점 없는 창밖을 내다보면 기우는 벽에
금이 가듯 소름 쭉쭉 끼치고, 열기와 질식의 접점에서
활활 달아오르는 몸과 두터운 아마포처럼 감기는 바람은
어묵처럼 엉겨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바람처럼 불어 대지만 바람이 아닌 불덩어리와
바람이 아닌 줄 알면서 막무가내로 달려붙는 몸은
느닷없이 퓨즈가 나가고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기 전에는 나가떨어지지 않는다

뜨거운 대가리를 뒤로 한 채
선풍기는 돌아간다, 사정없이 돌아간다

(July 3rd 2017)
213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