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디오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DATE : 200918   //   ( my prologue story )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모든 것을 놓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나는 칼을 준비했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 손목에 칼을 댔다. 아팠지만 모든 것들을 놓고 가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힘들었던 때였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렇게 이곳에 앉아 있다. 분명 그때 그 모든 것들을 놓고 가버렸다면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다. 한때 슬퍼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한때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을 뿐인 그저 잊히는 사람이 되었으리라.

  군대에서였다. 나는 힘들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피할 수 없는 입대였기에 즐겼지만 너무 즐겼었던 걸까? 나는 눈에 띄는 고문관이었다. 덩치도 덩치였지만 목소리도 그러했고, 해보지 못한 것은 어떤 일이라도 자신 있게 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특성 때문에 더 그러했다. 게다가 당시의 나는 피부병이 극심했다. 그랬기에 '무엇이던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하는 이등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뒤로 물러나 있게 되었고 그것은 선임들의 미움으로 이어졌다. 맞는 것은 일수였고, 왕따 당하듯이 무슨 일을 할 때에도 늘 나를 제외하곤 하였다.

  이등병으로 자대배치를 받자마자 유격훈련을 갔었다. 게으른 편이었지만 충분히 게으르지 않은 척 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날쌘 동기 녀석과 비교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천주교 군종이었다. 주말마다 일명 밥이 안 되는 군번은 작업을 해야 했지만 나는 꼬박꼬박 성당엘 갔다. 부대 내 규칙이었지만 성당에 있는 내내 즐거울 수만은 없었다. 분명 자대로 복귀하면 또다시 갈굼의 대상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빨래를 해놓으면 마르기도 전에 누군가가 훔쳐가기 일수였고, 밤에 자고 있으면 이마를 때려 괜히 나를 깨우는 고참들도 있었다. 힘들었다. 110kg로 입대한 나는 69kg까지 살이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극심한 스트레스. 그것이 원인이었다.

  휴가를 나가서였다. 어머니는 살이 많이 빠졌다며 좋아하셨지만 나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다시 부대 복귀를 하지 않고 싶을 만큼 힘들었었다. 남들은 일병이 되고 어느 정도 되어서야 나온다는 일병 정기휴가였지만 나는 그 끔찍한 곳을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래서 일병이 되자마자 나왔던 것이다. 정말 탈영이라도 해서 숨어 살면 마음만은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나 그러했듯 복귀해야 하는 날짜는 바로 코앞에 와 있었고, 나는 탈영이 아닌 부대로 복귀했다. ‘괜찮아 지겠지, 그래, 괜찮아 질 거야.’ 라며 스스로를 토닥이며 ...

  그리고 얼마 안 되어 되돌릴 수 없는 그때의 그 축축하고 어두웠던 공간에 나는 앉아 있었다. 용기를 내어 칼을 꺼내 들고 손목에 칼을 갖다 대었다. 긋고 또 그었지만 그리 깊게 긋지는 못했다. 그 손목에 칼을 여러 번 긋기까지 했지만 결국 난 죽지 못했다.

  그 이후 내가 속해 있었던 소대는 해체되다 시피 했고, 내가 속해 있던 중대 역시 다른 중대와 통폐합 후 다른 이름의 중대가 되었다. 나는 중대를 옮겼다. 나 때문에 힘들어 했을 친한 동기 녀석이 있는 곳으로. 나를 걱정해준 대대장님의 배려였다. 그 일이 있고서야 나는 군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름 성실하게 생활을 하긴 했어도 제대하는 그 순간까지 나로 인해 힘들어 했을 동기 녀석과 내가 속해 있었던, 전역 할 때까지의 나의 소대 고참들에겐 아직까지도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게 되었었다.

  가끔은 그때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다시 나를 다독거리고 잘해보려 했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로 인해,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힘들어 했으니까. 이만 여기서 놓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도 나의 마음의 짐이 되었다. 어쩌면 그때의 그 고참들-내가 처음에 속해 있던 소대의 고참들과 내가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소대의 고참들-은 벌써 잊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잘못된 선택이란 것도 알고, 하지 말았어야 할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리고 아직까지 나의 손목엔 그때의 상처가 남아 있다. 하지만 이젠 마치 원래 있었던 내 손목의 주름인 것처럼 남아 있다.
  그때의 미안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으로 나름 열심히 살아가려 하고 있다.
  그때의 모든 것들이 영원히 잊혀 질 수 없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