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시모음 _ 시시 

강인한 - 좋은 시의 몇 가지 유형 (3)

아름다움이 있는 시

누가 뭐래도 문학은 예술입니다. 예술을 말할 때 가장 먼저 꼽는 게 문학입니다. 문학에서도 맨 앞에 내세우는 것은 시입니다. 그러므로 시가 예술임은 누구나 아는 상식입니다. 예술이 추구하는 게 무엇입니까? 바로 아름다움이지요. 미(美)를 추구하는 까닭에 시가 지니는 미 역시 숭고미, 우아미, 비장미, 골계미를 떠나서 말하기 어렵겠습니다.

고기잡이를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한가로운 풍류로 즐김을 노래한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는 우아미(優雅美)가 있고, 죽은 누이를 그리며 슬픔을 참고 내세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월명사의 「제망매가」에서 드러나는 것은 숭고미(崇高美)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모가지를 드리우고 조용히 피를 흘리겠노라고 말하는 윤동주의 시 「십자가」에 깃든 비장미(悲壯美), “얼굴을 선캡과 마스크로 무장한 채/ 구십 도 각도로 팔을 뻗으며 다가오는 아낙들을 보”는 것부터 시작하여 풍자, 해학으로 독자를 즐겁게 하는 권혁웅의 시 「도봉근린공원」은 골계미(滑稽美)를 띠고 있습니다.

검고 푸른 달밤, 관능적인 여인의 춤이 그치고 그녀가 헤롯왕에게서 상으로 받기를 바란 그것을 쟁반에 담아 가지고 나옵니다. 푸른 달빛 아래 빛나는 은쟁반, 그 위에 검붉은 피를 흘리는 사람의 머리. 영국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 소름끼치도록 무섭고 아름다운, 바로 이 장면을 위해서 희곡 「살로메」를 썼다고 합니다. 그건 유미주의 혹은 탐미주의 내지는 예술지상주의라고도 부르는 문예사조입니다. 미적 가치를 가장 높은 가치로 보고 모든 것을 미적 견지에서 평가하는 태도나 세계관 곧 예술을 위한 예술, 더 나아가 악마주의로까지 길을 열어나가는 것 자체가 순수예술의 존재 그 자체일는지도 모릅니다.

다리를 벌리고 앉은 의자 아래
졸고 있는 죽은 고양이 옆에
남자의 펄럭이는 신문 속에
펼쳐진 해변 위에
파란 태양 너머
일요일의 장례식에
진혼곡을 부르는 수녀의 구두 사이로
달려가는 쥐를 탄
우울한 구름의 손목에서 흐르는
핏방울이 떨어져 내린
시인의 안경이 바라보는
불타오르는 문장들이 잠든
한 줌 재가 뿌려진
창밖의 검은 밤 속

-- 강성은, 「아름다운 계단」부분

너를 껴안고 잠든 밤이 있었지, 창밖에는 밤새도록 눈이 내려 그 하얀 돛배를 타고 밤의 아주 먼 곳으로 나아가면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에 닿곤 했지, 산뚱반도가 보이는 그곳에서 너와 나는 한 잎의 불멸, 두 잎의 불면, 세 잎의 사랑과 네 잎의 입맞춤으로 살았지, 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의 스산한 벌판에선 밤새 겨울밤이 말달리는 소리, 위구르, 위구르 들려오는데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 내 작은 나라의 봉창을 열면 그때까지도 처마 끝 고드름에 매달려 있는 몇 방울의 음악들, 아직 아침은 멀고 대낮과 저녁은 더욱 더 먼데 누군가 파뿌리 같은 눈발을 사락사락 썰며 조용히 쌀을 씻어 안치는 새벽,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 박정대, 「음악들」전문

연쇄법을 구사한 시「아름다운 계단」에서는 기괴한 가운데 느껴지는 미의식이 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나 에드거 앨런 포에게서 풍기는 약간 그로테스크한 미의식입니다. 그리고「음악들」에서는 부드럽고 달콤한 말맛의 음악성을 곁들여 판타지 같은 이미지의 연속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지요. 이와 같은 시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모호한 말도 아닌 혼잣말의 안개 속에 종적을 감추는 비열한 시들보다 차라리 열 배 백 배 낫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좋은 시의 갈래를 감동이 있는 시, 상상의 재미가 있는 시, 아름다움이 있는 시로 나누어 보았는데 이는 내가 혼자 생각해 본 분류에 지나지 않습니다. 유명한 학자들의 빛나는 이론에 도움 받은 바도 없이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딴에는 열심히 시를 써오며 내 몸으로 터득한 어설픈 시론에 불과합니다. 한 편의 시가 저런 요소들을 두루 섞어서 나타날 수도 있겠고, 전혀 다른 모습의 시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 한 편을 탈고하고 나서 이 세 가지 기준에 맞춰 자기 스스로 점검해 보는 것도 그다지 무익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론    ㅡ    999 hit   /   (March 19th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