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시모음 _ 시시 

김선우 -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 지성사. 2007년

시집 뒤 표지글



시를 짓는다, 시를 받는다고도 말한다. 시와 논다고도 하고, 시에게 나를 빌려준다고도 한다. 나는 그냥 시를 쓴다고 말한다. `쓴다'고 말할 때, 시 쓰는 나와 세계 사이의 거리는 아득히 넓고 거친 격랑 속이다. `쓴다'의 거리감 속에는 섣부른 신비가 개입하지 않아서 좋다. 쓰는 주체로서의 나는 나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그 모든 주체들의 말을 잘 듣기 위해 눈 코 귀가 해지도록 안테나를 세우고 주파수를 맞추어야 한다. 아무리 애써도 못 듣는 때가 더 많고 아무리 몸을 납작 엎드려도 주정하듯 내 말만 하는 때가 더 많다. 그러므로 `쓴다'는 노동을 환기한다. 정신의 노동, 영혼의 노동 같은 말들이 동시에 떠오르지만, 어떤 수식어로 몸을 나누든 `쓴다'는 노동이라는 점에서 인간적이다. 몸과 마음의 노동인 시 쓰기는 피안을 그리워하면서도 기필코 차안에 남는 자의 것이다. 그리워하면서 나는 쓴다. `쓴다'의 거리감 속에서 세계는 서둘러 혼연일체 되지 않는다. 저마다의 싸움으로 쟁쟁한 존재의 고투 속으로 몸과 마음의 오감을 들이민다. 들이밀면서 때로 내가 먼저 지치기도 하고 나의 감각이 너의 감각 속으로 스미는 환희를 드물게 맛보기도 한다. 나는 나이고 나 아니기도 하다. 나와 다른 너와, 나이기도 한 너를 우리라고 할 수 있다면, 시쓰기는 우리의 쓸쓸함과 슬픔과 아름다움에 몸을 바싹 붙이는 일. 몸과 몸의 경계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경계를 지우거나 넘어서는 일.`지금 여기'의 아득한 거리감 속에서 오늘도 나는 쓴다.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세상의 하루해를 지지고 볶으며 그리워한다. 떠도는 몸들이 벌리는 쟁투의 고단한 흔적들. 그 속에 무언가 `쓰는' 자로 기꺼이 남고자 하는 내 모든 행/불행의 뿌리와 꽃들에 입 맞춘다. 오, 자유!

시인의 말    ㅡ    178 hit   /   (July 30th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