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시모음 _ 시시 

황지우 -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 지성사. 1999년

시를 피했다. 다시 꺼내보니 그 중에는 8년이 넘은 것들도 있다.
그 동안 잘 놀았다. 얼마나 괴로웠을 것인가?
지난 여름 혼자 미케네 城성을 올랐다. 아가멤논 왕이 살해되었던 메가라를 한참
촬영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아까부터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참혹한 지중해 햇살에 대해 우산을 펴고 있는 오래된 올리브 나무 그늘 아래에서
한 낯선 그리스 사나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당신은 내 얼굴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첫 말문이 엉뚱하기도 하고 어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어서 나는 바로 되물었다.
"그런 당신은 내 얼굴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그랬더니 그는 대뜸 자신의 팔뚝을 기어다고 있는 개미를 내게 보여주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개미들과도 대화할 수 있다."
나는 어쭈구리, 이거 봐라, 하는 심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사이코인아, 애니미스트인가?"
그는 미키니(미케나이의 현지 이름)에서 시와 철학적 에세이를 쓰는 것을 직업으로 하고 있다고
다소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세상에 인간으로 나와 생을 누리고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어지러움과 경이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출판사가 있는 홍대 거리를 걷다가 대낮에도 머리 위에 돌고 있을 별자리를 생각했다.



1998년 12월
황지우

시인의 말    ㅡ    193 hit   /   (July 30th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