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시모음 _ 시시 

나희덕 - <그곳이 멀지 않다> 문학동네. 2006년

예술은 가장 하찮은 잎사귀라고 말한 작가가 있었다. 가장 새로운 것은 언제나  가장 작은 법이기에. 그렇다. 도무지 싹이 돋을 것 같지 않은 민둥가지를 뚫고 시가 숨은 눈 속에서 움트곤 하지 않던가. 그리고는 어느새 무성해져서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지 않던가.

1997년 가을에 나왔던 시집을 7년 만에 다시 출간하면서, 언젠가 내 품에서 날아간 잎사귀가 손 위에 잠시 내려앉은 느낌이 든다. 한때 나를 이루었던 피와 온기, 절망과 기다림의 흔적이 낯설고 어색하다. 오랜만에 옛집에 돌아왔을 때처럼, 문 앞에서 누구의 이름을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얼마 전 벽돌 한 장 그대로 남아 있지 않은 고향집을 보며 그곳을 영영 잃어버린 것 같았는데, 그래도 시집이라는 또 하나의 집이 있어 이렇게 돌아올 수 있구나 싶다. 어제의 잎사귀들로 오늘의 발등을 덮을 수 있다니. 이 시들의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주신 문학동네 식구들께 감사드린다.

2004년 봄
나희덕

시인의 말    ㅡ    234 hit   /   (July 30th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