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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 새로운 시의 길을 찾아서
칼럼

시의 출발은 항상 사춘기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시를 처음 썼던 때가 중학교 3학년 때 쯤으로 생각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고 괜히 누군가 보고 싶어지곤 했었습니다. 두근거리는 동경이라고 할까, 설렘이 있던 바로 그 자리가 시가 태어난 자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자신 대학에서 시작법을 가끔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는 걸 느낀 적이 많습니다. 시에 대해서 일정한 이해나 믿음들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기본적인 약속 아래서 시 쓰기를 해야 할 텐데 딱히 '시는 이런 거다'라고 말하기는 참으로 힘듭니다.

제 경우에는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를 보여 주는 것으로 끝나곤 합니다. 후줄근한 차림새의 우편 배달부 청년이 망명 생활 중인 대시인 네루다에게 자꾸 접근하면서 시가 뭔지 좀 가르쳐 달라고 하지요. 이 청년이 시를 필요로 하는 목적은 뻔해서, 시인 하면 떠올리는 것은 여자들한테 편지가 많이 온다라는 것입니다. 그는 베아트리체라는 아름다운 술집 종업원 아가씨에게 접근하기에 가장 손쉬운 수단으로써 시를 쓰고 싶어했고, 네루다를 계속 졸라댔지요. 거기서 네루다가 청년에게 알려준 시의 비밀 가운데 하나는 은유(隱喩)였습니다. 네루다는 시를 물으러 온 첫 순례자라고나 할까, 순진무구한 청년에게 '시는 은유다'라고 넌지시 일러줍니다.

어느 날 해변 가에서 수영을 즐기다 나온 네루다는 편지 한 통을 들고 찾아온 청년에게 지금 자기가 쓰고 있는 시를 읊어주죠. '바다는 일곱 개의 초록 혀이다/나는 바다다/나는 바다다/그 이름을 부르며 절벽을 내리친다' 이런 시를 읊어주니까 청년은 '말들이 어지럽다. 말들이 출렁이는 배처럼 어지럽다'라고 말하죠. 그러니까 네루다가 '그래, 그게 바로 메타포라는 거야'라고 일러줍니다. 말들이 흔들리는 배처럼 어지럽다. 말들이 반복되면서 출렁출렁거린다는 것을 흔들리는 배처럼 어지럽다고 말하는 게 은유라는 거죠.

은유의 눈부신 매혹 앞에서

모든 시가 은유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는 저 장대한 교향곡, 어마어마하게 큰 대성당 따위의 건축물, 저 신나고 스피디하고 스펙터클한 영화,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매력을 지닌 연극… 이런 여러 장르의 예술에 비한다면 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른바 미디엄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시는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일 뿐이죠. 다른 예술 장르들은 미디엄이 굉장히 크고 매체 자체가 주는 파워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직접적입니다. 시는 미디엄 자체가 언어 외에 아무 것도 없으므로 여러 예술 가운데 시는 가장 시시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언어라는 미디엄을 같이 공유하는 게 소설일 텐데, 시는 짧기도 하고 압축시켜야 하는 등 모든 예술 장르 가운데 어떤 면에서 가장 초라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라하고 시시한 시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힘, 눈부신 매혹을 자랑하는 것은 많은 시인들이 구사하고 있는 은유 덕분입니다. 은유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보들레르의 시들을 흔히 예를 듭니다. 보들레르는 「원수」라는 시에서 '내 청춘은 한갓 캄캄한 뇌우(雷雨)였을 뿐'이라고 노래했습니다. '내 청춘은 캄캄한 번개였다. 내 청춘은 캄캄한 날벼락이었다' 이 시가 언어로써 성립시키는 '청춘은 번개다'라는 은유를 피카소 같은 대화가라 할지라도 어떻게 그림으로 그릴 수 있겠습니까? 그 어느 위대한 작곡가라 하더라도 언어로써 딱 완성되는 청춘의 번개를 어떻게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건축가가 청춘의 뇌우를 대리석을 얹어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이 은유는 시의 가장 고유한 힘 가운데 하나입니다.

물론 모든 시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은유로 되어 있을 수 없습니다. 너무 멋진 표현들로만 되어 있으면 사람들은 금방 질리고 맙니다. 어떤 삶의 비밀을 알려 주는 내용이 배제된 채, 수사적으로만 은유를 사용할 때 그것은 공허해집니다. 삶의 비밀을 압축하면서 하나의 은유가 성립되었을 때 놀라운 힘을 발휘합니다. 이를테면 젊은 시절의 보들레르가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악이라고 표현한 현실 속에서, 금치산자로 알콜 중독자로 매도당하면서도 놓지 않았던 자신만의 지고한 이상을 모순어법적으로 이 더러운 현실 속에서 언어를 보석화시켜서 '내 청춘은 캄캄한 번개였다'라는 놀랄 만한 은유를 성립시켰을 때 시는 어떤 예술 장르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힘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제가 처음 시를 쓸 때에는 자전거를 끌고 대시인을 찾아다녔던 우편배달부와 같은 수준도 못 되었습니다. 연애편지를 잘 쓰기 위해서 쫓아다니다가 은유라는 것을 체감적으로 터득했지만, 시가 처음 찾아온 사춘기 무렵에 내가 생각했던 시란 지금 생각해도 유치무비한 것이었습니다. 김소월의 '초혼' 같은 수준이었습니다. 혹은 이발소 그림과 함께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또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지 말라'라는 속된 경구 수준이었거나, 아니면 소월류의 직설적인 감상주의가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나의 손위 형님이 자기가 쓸려고 사다둔 60년대 일기장이 있었어요. 그 일기장에는 매월 그 달에 어울리는 우편엽서 같은 풍경에 시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11월이면 낙엽이 쌓여 있었고, 거기에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는 시가 적혀 있는 걸 좋아서 외우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6월이었던가, 사슴이 멀리 있는 숲을 배경으로 릴케의 '고독'이라는 시가 실려 있었어요. 별것도 아니었는데 '고독 너의 희푸른 이마에 나를 눕히노니' 하는 부분을 읽는데,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가슴이 무너져 내려 견딜 수 없게 하는 걸 경험했습니다. 아마 다른 많은 분들도 시를 읽으면서 얼마쯤 다르기는 하지만 저와 마찬가지의 경험들을 했을 겁니다.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주저앉는, 길을 걸어가다가 무릎의 힘이 푹 빠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주저앉아 버리는 느낌을 경험한 사람만이 시를 읽을 수 있고 시를 쓸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시를 쓰고 읽고 즐기기 위해서는 시에 대한 눈, 시의 눈이 가슴에 달려 있어야 합니다. 이게 주저앉아 버려야 합니다. 시를 향한 눈이 먼저 열려야 다른 사람의 시도 받아들일 수 있고, 그 감흥이 반복되면서 눈높이가 점점 올라가고 시적 수위가 높아질 때에 시를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가 나를 찾아와서, 시가 들어갈 가슴에 있는 경락이 열렸을 때 사람들은 흔히 낙서를 하기 시작합니다. 낙서를 하고 그 낙서가 떨어지는 글자로 끝나지 않고, 대개는 친구건 이성이건 누군가에게 편지, 혹은 일기를 쓰기 시작합니다. 모든 시의 출발은 이 일기장과 연애편지가 아닌가 합니다. 밑 모를 두려움과 함께 자기 자신이 항상 못마땅해 자책하는 심정이 되었을 때, 또는 마음이 밖으로 열려서 누군가가 보고 싶어질 때, 혹은 어떤 곳으로 훌쩍 가버리고 싶어질 때에 품는, 이른바 먼 곳에 대한 동경을 우리는 낭만성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시의 출발점은 이 낭만성, 자기의 다른 것에 대한 그리움, 설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가 40이 넘고 전업작가로서 시집도 내고 하는 이 순간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고, 모든 시인들은 최초의 그 자리, 낭만성이라고 하는 불편한 공명통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번은 백발이 성성한 정현종 선생님을 연세대에 가서 뵈었는데, 제가 약간은 속으로 비난하는 투로 '선생님, 선생질 재미있습니까?' 했더니 파안대소를 하시면서 '지금도 젊은 여제자를 보면 연애하고 싶어' 그러더라구요. 아! 저게 시인이구나 항상 어떤 동경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가 시인이구나 하는 감동을 맛보았습니다.

문예반 한답시고 고등학교 때부터 벌써 머리가 벗겨진 조숙한 친구 녀석과 같이 서로 불량배 흉내를 내면서 교복도 이상하게 입고 다녔던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를 대학에서도 만났는데, 저보다 시적 수준이 높고 시 써놓은 것을 보면 진도가 훨씬 앞서 있었습니다. 녀석이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김수영이라는 시인의 시를 노트에 써서 읽어 보라고 주었습니다. '왜 혁명에는 피의 냄새가 나는가'라는 시를 보여 주었는데, 당시 나는 '무슨 시가 이러냐? 이미지도 없고 시어도 아름답지 않고…' 하며 김수영의 시를 못 받아들였습니다. 그가 시인이었다는 것도 몰랐고 대학에 와서 접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문학지인 「현대문학」 등을 읽으면서 나도 금방 시인이 될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대학에 들어가서야 처음으로 김수영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또 정현종의 시들을 만나면서 그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그 이전에 내가 시라고 생각했던 게 얼마나 유치한 한낱 감상주의의 똥물에 불과했는지, 얼마나 거짓되게 언어만을 이쁘게 다듬은, 마치 가성으로 입을 모으고 점잖게 노래 부르는 여학생 같은 시에만 길들여져 왔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시적 수위가 높아지는 것은 경멸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일정한 시들에 대한 경멸 혹은, 그 동안 자기가 시라고 생각했던 것, 자기가 써놓았던 시들에 대한 혐오감 따위가 젊은 시절의 나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모릅니다. 내가 써 놓았던 것들이 밤에는 위대한데 아침에는 형편없어지는 그게 정말 속상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쓰라림이 진하면 진할수록 시의 눈높이가 올라가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눈높이만 높다고 해서 좋은 시를 쓰는 것은 아닙니다. 눈높이는 높은데 시는 안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눈을 높여야 한다는 것. 자신의 눈높이만큼 시를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 보는 것, 그리고 낙차에 대해서 진실로 괴로워해 보는 것 그런 괴로움이 있어야 다른 사람의 좋은 시에 대해서 찬탄할 수도 있고, 이런 경멸과 찬탄이 반복되면 서 시적 인간으로 성숙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서구적 교양의 굴레를 벗어나

대학 시절의 저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한국어로 된 시가 너무 시시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외국 시들을 해석할 수 있는 수준이 되고, 외국 시들을 볼 때에 영어나 불어나 독일어로 되어 있는 시들은 너무 멋있는데, 왜 우리 조선말로 된 시들은 멋이 없을까 하는, 어쩔 수 없는 서구적 교양으로 무장된 그 당시 우리 세대들의 분위기를 조장했던 학교 교육 탓으로 문화적 사대주의에 깊게 침윤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감탄했던 것은 영시(英詩)든 불시(佛詩)든, 어떤 나라 시든 간에 그들의 시 자체에 자기 형식이 있다, 어떤 것이 시이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규제 장치가 있다, 그런 규제 장치 때문에 시를 쓰는 게 어렵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규제 장치를 맞추고 시를 썼을 때의 성취감은 얼마나 클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처음에 시라고 생각할 때, 시와 시 아닌 것의 차이를 대체로 어디서 봅니까? 외적인 형식으로 볼 때 풀어쓰면 다 산문인데, 시라고 행갈이를 합니다. 우리나라 시에서 시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방법은 행을 끊거나 잇달아 쓰는 것입니다. 행갈이 했다고 해서 그게 다 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도 아닌 것을 행갈이 해서 억지로 시인 체하는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단테 신곡의 '세 번째 칸토(Canto)'를 참 좋아하는데 지옥의 문 입구는 신곡 전체가 3부로 되어 있죠. 지옥, 연옥, 천국 그리고 각 부가 33칸토로 되어 있습니다. 3부 33칸토, 각 연이 3행으로 되어 있습니다. 신곡을 지배하고 있는 숫자는 3입니다. 신곡 전체가 33 곱하기 3이니까 99칸토죠. 서시가 1칸토 더해져서 전체가 100칸토입니다. 이 숫자는 기독교적인 상징입니다. 삼위일체라고 하는 중세인들을 사로잡았던 종교적인 강박관념에서 연유한 거죠. 99에 하나 더해서 100, 100은 완전함을 상징합니다. 건축가가 설계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시를 만드는 데 있어서 기본적인 원칙이 있다고 할까, 3행으로 되어 있는 각 연은 한 행이 11개의 음절로 되어 있습니다. 각 행의 마지막 단어들의 모음들이 전부 일치해 있습니다. 각 음절은 강약 강약 이런 강세에 의한 음악적인 박자감이 있습니다. 13세기 이탈리아 무연시의 형식인데, 14세기에서 셰익스피어 시대까지 소네트 형식과 함께 어떤 것이나 시이기 위한 음악적인 구조, 건축술적인 구조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 되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식으로 감정만 읊조려서는 안 됩니다. 언어를 그야말로 연금술사처럼 가공을 해야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세 번째 칸토(Canto terzo)' 지옥의 입구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Per me si va ne la città dolente,
per me si va ne l'eterno dolere,
per me si va tra perduta gente.
Giustizia mosse il mio alto fattore;

전부 'e'로 끝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음, 모음, 자음, 모음이 뚜렷이 구분되어, 이태리어 특유의 투명성이 반향처럼 울려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음향만이 아니라 여기에 깃들인 의미도 기가 막힌 걸 알 수 있습니다. '나를 거쳐서 슬픔에 잠긴 도시로 가거라/ 나를 거쳐서 영원한 괴로움 속으로 가거라/ 나를 거쳐서 사라져 버린 족속 곁으로 가거라'라고 지옥 입구에서 단테가 부르짖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옥'은 그 당시 피렌체의 현실이고, '슬픔에 잠긴 도시', '영원한 괴로움' 등은 모두 피렌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렇듯 자신을 억압하고, 견디기 힘든 현실을 두고 '자기를 통해서 가라'고 첫마디에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 '나를 통해서 현실로 가는' 강렬한 주관성은 곧 단테의 문학적 근대성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절절함과 음향적인 자기 질서가 보기 좋게 교직되어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 '소네트 145'-러브송에서도 마찬가지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Those lips that Love's own hand did make
Breathed forth the sound that said 'I hate'
To me that languished for her sake;
But when she saw my woeful state,
Straight in her heart did mercy come,

1행과 3행의 'make', 'sake'라는 단어로 각운을 맞추었습니다. 2행과 4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운(rhyme)이 잘 맞아 있고, 10음절을 한 행으로 12행을 만들고, 여기에 2행을 추가해서 14행시가 되어 있습니다. 이태리어와 영어는 전혀 다른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음향적인 질서를 지킨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이런 점은 보들레르에게서도 그대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 이런 외국 시들을 읽으면서 한국어로 시 쓰는 것에 대해서 깊은 컴플렉스에 잠긴 적이 있습니다. '우리말은 부착어여서, 우랄알타이어, 티벳어, 일본어까지 음절이 부착되면서 의미가 발생한다. 속어로는 굴절어라고 하는데 활용에 의해서 그런 차이에서 오는 게 아닐까. 소월 시에 들어 있는 7.5조 4.4조에는 이런 미터 개념의 가락은 있지만 그냥 가락만 직선적으로 지나갈 뿐이지, 행과 행 사이에 어떤 화성적인 기둥이랄까 음량의 부피가 없다. 우리 시는 평면적이고 가늘다. 나는 왜 이런 후진국에 태어났나' 따위의 정말 터무니없는 자책감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가스레인지를 켰는데 파란 불꽃들이 돋아났습니다. 그게 풀잎같이 보이더라구요. 파란 보랏빛 풀잎처럼 보여요. '불 속의 풀, 불 속에 피어오르는 풀' 하면서 주절주절거리다가 책상에 와서 그 구절을 하나 써놓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불 속에 피어오르는 불, 풀 따위의 각운(脚韻)이랄까 하는 게 느껴졌어요. 이렇게 한번 써보면 어떨까 하고 앞 단어를 맞춰 봤습니다.

졸시 「메아리를 위한 각서(覺書)」를 그렇게 썼는데, '불 속에 피어오르는 푸르른/ 풀이어 그대 타오르듯' 하는 대목처럼 '불'하고 '풀'을 앞에다 뺐습니다. 술이란 단어가 금방 떠올라 불, 풀, 술, 술 처마신 몸과 넋에 제일 가까운 등 울, 물, 줄, 둘 첫 단어의 유음 현상을 의도적으로 뺐습니다. 불에서 둘에 이르기까지 소리가 메아리 되어 나가는 그런 의도라고 할까, '불 속에 피어오르는 푸르른/풀이어 그대 타오르듯/ 술 처마신 몸과 넋의 제일 가까운/울타리 밑으로 가장 머언/ 물소리 들릴락말락/ 줄넘기하는 쌍무지개/둘레에 한세상 걸려 있네' 라고 읊었습니다. 줄넘기하는 무지개의 이미지가 좋지 않습니까. 이걸 써놓고 그날 밤은 흥분해서 잠을 못 잤습니다. 아, 나는 천재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또 두려움이 왔습니다, 이건 한밤의 착각이 아닐까 하는.

다음날 봤는데 견딜 만해서 다시 정서해서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님께 가지고 갔습니다. 나는 굉장하다고 말해줄 줄 알았는데 선생님은 재미있다고 하시면서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제가 시를 발표한 지 20년이 넘습니다만, 그 어떤 평론가도 이 시에 대해 주목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두 번째 시집에 실린 「뱀풀」이라는 시에서는 음향적인 조건을 더 작위적으로 했어요. '열'자도 맞추고 두운, 각운을 다 맞춰 봤습니다. 역시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습니다. 즉 어떤 평론가도 여기까지 의식이 안 와 있었습니다. 한 번도 거론된 적이 없습니다. '현단계 한국시에서 이 두 시는 실패했다. 우리말로 시를 쓸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행갈이로도 음향적인 장치로도 이미지로도 시가 되게 하는 절대적인 보존을 못해주는데,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고민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그래 내가 시를 쓰지 말자. 시를 쓰지 말고 시적인 것을 쓰자. 시적인 것을 찾아보자. 결국 어떤 텍스트를 얻은 문장을 시 되게 만드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어떤 시적인 것일 거다. 시적인 것은 뭐냐. 시적인 것은 모든 성공한 시 속에 들어 있다. 모든 시가 성공한 시인 것은 아니지만, 시적인 것은 성공한 시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를 아는 사람은 그 말을 압니다. 시라는 것은 도사들만 하는 건가 하는 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만,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시를 아는 사람만이 정확하게 알고 서로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우리 안에 일어나고 있는 시와 관련된 여러 현상들 속에, 얼마만큼 시적인 것에 대한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이를테면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등에서 여고생들이 줄서 있는 시집들 속에는 사이비 시들이 대부분입니다. 시 비슷한 것을 우리가 시라고 생각하거나 제가 사춘기 때 시라고 생각했던 것 그것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눈높이는 올라가기 마련입니다.

저는 시적인 것의 추구를, 형태 파악을 통해 지금까지 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어떤 반시(反詩)적인 것 가운데서 찾았는데, 시를 쓰는 전략만이 아니라 80년대의 고통스러웠던 권위주의 독재체제하에서 현실에 항의하고자 하는 메시지로서 형태를 비판하고 이상한 짓을 한동안 자행했었습니다. 대단히 파괴적이고 한국문학의 자폭에 이른 수준이죠. 그런데 자폭이라도 해서 우리 언어가 얹혀 있는 현실이 참으로 문제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불교의 선(禪)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더 이상 나갈 길이 없는 모든 아방가르드(avant-garde; 전위)들의 운명이기도 하지요. 그러던 차에 어느 날 저는 『임제록(臨濟錄)』을 읽게 되었습니다. 임제 스님의 법어들은 뭔지 모르겠고 마음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법어에 이르게 하는 착어들, 힌트들인 게송(偈頌)이 굉장히 시적으로 되어 있는데, 어느 구절에선가 골이 갈라져서 빛이 들어오는 것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별것도 아닌 한문 두 구절이었는데, 번역하면 '비온 뒤 장강이 하얗게 하얗게 흐르도다'입니다. 그 구절을 접수했을 때, 중학교 때는 가슴이 주저앉았더라면 이번에는 정수리가 뽀개져 버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눈이 한 껍질 벗겨져서 열린다고, 시적인 것을 추구한다고 해 놓고도 뭐가 뭔지 알 수 없다고 했는데, 시적(詩的)인 것이 선적(禪的)인 것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그것은 우리말로 시 쓸 때 우리 안에서 시는 깨달음이 아닐까, 시적 인식이 어떤 것을 시적으로 만들어준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방법으로 선적인 사고, 이것이 뜬금없이 우리 주변에 깔려 있는 시시한 일상들 속에, 시적인 것으로 순간순간 반짝거리면서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선적인 눈으로 보면 그전에 별것도 아닌 것들이 어마어마해지고, 뭔가 도사리고 있고, 시적으로 보였다고 할까요. 그래서 시와 선이 비슷한 것인데, 단지 선은 언어를 불신하고, 불립문자를 으뜸으로 치지요. 그래도 화두선(話頭禪)은 언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시도 언어가 팽배해 있으면 시가 되지 않아요, 언어를 가능하면 줄여야 합니다. 언어를 현저히 결핍시키는 것이 시이죠.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의 밸런스가 시일 터인데, 시는 오히려 말하지 않은 것, 여백에서 숨겨 두었던 것, 여기가 시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말은 꼭 해야 할 것만 간신히 하는 것이 시이다, 언어의 결핍이되 역시 언어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시와 선은 상당히 닮아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선은 언어라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깨달음을 얻으면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지만, 시는 도의 경지까지 가버리면 끝나버리죠. 시는 도의 경지까지 가면 안 되고 그 근처에서 어른거리다가 다시 내려오고 하는 경계상의 떨림이 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것이 저의 담양 체류 시절, 「게눈 속의 연꽃」이라는 시집에 그런 저의 흔적들이 남게 되었습니다.

저는 선적인 것이 놓여 있는 성층권, 즉 정신의 성층권, 거의 산소가 희박해서 숨도 쉴 수 없는 너무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없었고 또 올라가고 싶지도 않았고, 그러다가 문득 거꾸로 추락해서 진흙 속에 처박혔다. 그래서 저는 어두운 선으로서 인간의 심층에 놓여 있는, 어두운 것에서 시적인 것을 발견할 수는 없을까 해서 이번에 나온 시집에는 선적인 깨들음을 많이 담고자 애썼습니다.

가령 정신병자가 복도를 강으로 착각하고 건너지 못하듯, 모든 시적인 메타포의 원리는 착각입니다. 환자는 고통을 받겠지만, 멀쩡한 사람이 복도를 강으로 생각하면 시가 됩니다. 고통을 받기는 하지만, 정신 질환적인 내용 자체는 어떤 시적인 것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모든 정신질환자의 착란이 시인 것은 아니지만, 90년대의 이념이 상실되고 많은 사람들이 가슴아파하는 지나온 한 시대의 정신적 풍경을 그려보고자 했던 게 작년에 나왔던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입니다. 아무튼 한국시는 고정관념에 묶여 있지 말고,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문예진흥원>에서의 강연 원고
1999년

http://namoo-radio.com/bbs/view.php?id=gw&no=38